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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phite_x 글자 쓰는 흑연 Grap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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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카히나] 백우 (白雨) 02
for. 남편♥ (@Yeoboooo)

BGM. 로로스 -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 (http://youtu.be/0kbjei196MQ)







나는 왠일인지 몸이 고단했지만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낯선 이가 침범해온 좁은 방의 온기가 어색해서 일 수도 있었고, 유난히 쓰게 내려앉은 담배 연기가 무거워서 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몸을 만 채 잠든 어린 소년의 굽은 등을 바라보다가 나는 벽에 기대어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쇠창살이 내려온 작은 창문 너머로 취객의 외침과 비 오는 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소리가 요란했지만 나는 그것이 유난히 시끄럽지 않다고 느낀 것도 어쩌면 이 녀석 때문일지 모른단 생각을 했다. 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던 방안을 가득 채운 녀석의 존재가, 그 그림자의 무게가 유달리 시끄러웠던 새벽, 나는 너를 무어라 여기기 시작했을까.


*


아저씨, 하고 다 갈라진 목소리로 나를 부른 건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쯤이었다. 주로 오후부터 일하는 덕분에 아직 집에 있던 거였지만 녀석은 그동안 밀렸던 잠을 청산하는 건지 해가 뜬 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눈을 떴다. 화장실 문턱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내 뒤까지 무릎걸음으로 와 등을 톡톡 두드린 녀석을 내려다봤다. 반 쯤 뜬 눈으로 웃으면서 나를 불렀다. 아저씨, 안녕.

"오랜만에 푹 잤더니 너무너무 개운해요."

허공에 다리를 직각으로 올려 쭉 피는 움직임을 보인 히나타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폈다. 새집이 된 머리를 몇 번 문지르더니 배고프다며 다시 앞으로 엎드려 누웠다. 작은 간이 냉장고를 가리켰더니 다시 무릎걸음으로 냉장고까지 기어가서는 냉장고문을 열었다. 오, 빵! 감탄사를 내며 안에 들어있던 편의점 빵을 부스럭거리며 꺼냈다. 아저씬 안 먹어요? 고개를 저었더니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냉장고에 기대 빵 비닐포장을 벗겼다.

"언제 나갈거야."
"에엥, 아저씨. 나 안 보내는거 아니었어요?"
"내가 언제 그랬어?"
"내가 나갈지 안 나갈지는 오늘 일어나서 얘기하자며!"
"그래, 그래서 지금 얘기 하잖아."
"아 뭐야, 있어도 될 것처럼 나 재우더니. 치이."

빵으로 가득 찬 입을 오물거리며 잔뜩 투정하는 모습이 꽤 어린애 같아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학교는."
"안 다녀요."
"이거 교복 아니었어?"
"다녔었어요. 그리고 갖고 있는 옷도 교복 밖에 없어요."
"...너, 뭐 보호시설, 그런덴 알아본거냐?"
"아아뇨."

서너 입만에 빵을 해치운 히나타가 가루를 현관 바닥에 탁탁 털어 버리며 비닐을 쪽지 접 듯 접고는 손에 꼭 쥐었다. 목이 마른지 냉장고를 열어 들어있던 우유를 그대로 입에 대고 벌컥 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가봤자에요. 내 인생에 도움도 안 되고 나도 그 쪽에 도움이 안 될 뿐이니까, 서로 피해 볼 일 줄이는 거에요. 나는 이렇게 사는 게 맞아요."
"너 계속 그렇게 살면 이 아저씨같이 산다."
"나쁘지 않은데."

우유를 남은 한 방울까지 모조리 털어넣으며 웃었다.

"갈 곳 잃은 나 거둬주고. 최고 아녜요?"


*


비가 계속 왔다.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데 내쫓기도 애매하니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라고 했다. 방방 뛰어가며 좋아하길래 나도 따라 웃게 됐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간단한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하라 일렀다. 방세를 절반으로 내는 건 바라지도 않고 두 사람 먹여살릴 능력이 안 되니 네가 밥 먹을 수 있는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 말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밖으로 나가 <바캉스>의 홀 청소 자리를 얻어냈다고 했다. <바캉스> 주인 아저씨가 나와서 담배 필 때 몇번 옆에서 말동무를 해주고는 친해졌다고 했다. 원래 미성년자가 술집에서 일하는 건 불법이지만 아무튼 야간 개장 전에 장사를 안 할때, 그러니까, 새벽 한 바탕 사람들이 어질러 놓고 가면 아침과 오후 동안에 정리를 해주는 몫이라고 했다. 그정도면 나도 괜찮다 싶어 잘했다 칭찬을 해줬다. 그렇게 일을 하면 삼시 세끼 밥은 안 굶을 정도는 된다고 했다. 집세의 삼분의 일이라도 내겠다는 걸 기어이 말렸다. 정말 잠만 자는 녀석이라서 받기도 무안했고 혼자 살 때도 내가 다 냈던 몫이었으니까. 그리고 녀석은 본인의 일이 끝나면 언제나 그랬듯 <바캉스> 벽에 기대 앉아 시간을 보냈다.

"추우니까 집에 들어가 있어."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녀석이 보여서 집에 들어가라 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나. 그랬더니 발장난을 치며 고개를 흔든다. 아저씨 끝날 때까지 기다릴래요. 사람 구경 괜찮아요, 할만 해요. 연신 웃음끼를 띈 얼굴로 바닥에 앉아 손을 흔드는데 꽤 눈에 밟혀 쉽사리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도 난간에 기대 녀석을 계속 보고 있으니 이제는 히나타가 먼저 손짓을 하며 들어가라 일렀다. 누가 담배를 15분이나 넘게 피워요? 아저씨 그러다 잘린다. 얼른 들어가라며 새 날개짓 처럼 손바닥을 파닥파닥 거리길래 알겠다며 고갯짓으로 대답을 하곤 자리를 옮겼다. 늘 그런식이었다.

퇴근할때가 되서 가게를 정리하고 나오면 녀석은 좀이 쑤시지도 않은지 <바캉스> 앞에 가만히 앉아있다.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묶어놓은 것도 아닌데 묶인 양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니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양 손으로 탁탁 털더니 쪼르르 달려와 옆에 서는 히나타.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바다빌라까지, 녀석은 나를 기다리는 동안 봤던 사람들에 대해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아까 모르는 아저씨한테 막대사탕도 받았어요."
"모르는 사람이 주는 사탕 받는 거 아냐."
"에비, 내가 몇살인데, 그런 말이 먹히기나 해요?"
"꼬맹이는 다 조심해야해."
"그럼 꼬맹이를 아저씨는 집안에 덥석덥석 들여놔요?"

기가 막히게 허를 찌르기도 하고.

"그래도 어딘가가 맘에 드니까 나 허락한 거 아니에요?"

입꼬리를 최대한 늘려서 웃는 모습이 바깥 생활 때 타지 않은 느낌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그럴싸하게 늘어놓는 녀석은 아무 대답도 못하게끔 웃곤 했다. 대꾸 없이 머리를 쓰다듬자 할 말 없어 그런다며 타박을 늘어놓다가도 다시 사람 구경에 대해 얘기를 했다. 얻어 낸 막대사탕 두 개 중 하나는 꼭 내 손에 쥐어주면서. 나는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 얼굴을 익힌 지는 한참 됐고 얘기 하며 같이 엉덩이 붙인 지는 이제 하루 이틀 된 사이끼리 무슨 감정이 있겠냐만은, 나는 녀석에게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서러움과 동질감을 느끼는 터라, 히나타는 여러모로 낡아빠진 신선함을 줬다.

"네 멋대로 생각해라."


*


그래도 여전히 익숙해질 수 없는 부분은 있었다.

녀석의 습관 들 중 은연 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낯선 대사들이 그랬다. 녀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히나타의 '정말 집세 안 받을거에요?' 부터 시작해서 '보통 남자들은 전부 나랑 잤어요' 라는 말을 하기까지의 그 시간이 나는 아주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너랑 왜 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면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제 할일을 했다.

"그래두요, 아무래도 아무 댓가도 없이 이 곳에 있는 건 좀 그렇다구요."
"네 사고방식이 더 이상해. 차라리 돈을 낸다고 하던가 뭔가를 한다고 하면 했지, 왜 하필."
"가진 게 없으니 몸으로 떼우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네 나이가 말야!"
"열여덟도 섹스할 줄 알아요."

머리를 감고 나와서 수건으로 목을 덮는 주홍빛의 머리를 툭툭 털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뱉은 말이 생소했다.

"뭐?"
"열여덟도 섹스할 줄 안다구요."
"히나타, 그 뜻이 아니라..."
"그리고 사람들 좋아해요."
"......"
"열여덟이랑 하는 섹스."

나는 정말이지, 이런 순간들이 날선 듯 차갑게만 느껴졌다.

"아저씨는요?"
"히나타."
"솔직히 싫어하진 않죠?"
"......."
"그냥 어쩌다 비오는 날 가여워서 거둬 준 어린애가 섹스한다는 게 낯설어서 그런거지."

히나타가 샐쭉하게 웃었다. 그 자리에 얼어붙어 히나타의 얼굴만 보던 내 사고가 모조리 정지해버렸다.

"싫진 않잖아요."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히나타는 여전히 머리를 말리고 있었고 나는 집안의 짐들을 한쪽으로 밀어두다 그 자리에 굳어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 방안의 상황을 보면 우습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히나타는 너무 평온한 얼굴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고 있었으며 되려 어른인 내 쪽이 당황하고 있으니, 우스운 꼴은 분명했다. 뭐라고 해야하지, 나는 저 아이에게 뭐라고 해줘야 하나. 창밖 너머로 비에 젖은 취객들이 불평을 늘어놓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가 곧 시끄러운 소리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 소리에 묻혔다.

"저기 걸어다니는 아저씨들한테 물어보세요."
"......."
"싫다하는 사람은."

없어요.

콰르릉, 하고 천둥이 쳤다.


04:10 PM - 19 Aug 14 via Twis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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